[생각끄적] 카페라는 장소

오랜만에 교보에서 책을 골라 서점 한 켠에 마련된 공간에서 차분히 읽고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신랑과의 만날 시간까지 2시간 가량이 남아있고 허기도 져서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왔다. 꽤 긴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내 양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한 번씩 바뀌었다. 첫번째 손님들은 왼쪽 테이블에서 정말 조용히 수다를 나누던 남녀, 오른쪽 테이블엔 까르륵 웃음 날아다니던 여학생 둘, 벽 쪽 테이블엔 여자친구와의 문제들을 시시콜콜 털어놓고있는 남자와 착하게 웃으면 들어주고 있는 여사친, 혹은 잠재적 여친이 자리했다. (이 세번째 손님들의 대화는 매우 흥미로왔다.) 앞의 손님들이 가고 다시 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왼쪽 테이블은 역시 남녀 손님이 자리했다. 아까보단 좀 더 수다스러운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오른쪽 자리에 온 손님들은 대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남자 두명이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쩌렁쩌렁한지 벽쪽 손님들이 누군지는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남자손님들 덕분에 나는 너무나 소중히 골랐던 그 책은 읽지도 못한체 쓰레기 수출문제부터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미국등과의 온갖 문제들만 귀에 때려박히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다양한 주제들이 이렇게나 획일적인 태도로 다뤄지는 걸 보면 난도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다. 그 난도질에 내 귀가 얼얼하다.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아주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짧은, 15분 정도면 다 그릴 수 있는, 굳이 사람일 필요는 없고 테이블과 움직이는 무언가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불가능할테지만...

[제작노트] 16개의 제목들

작업을 시작하고 불면증이 생겼다. 그 덕에 16개의 소제목이 나왔지만 그 이후로 쓸데없는 불면증만 지속되고 작업은 풀리지 않고있다. 저만큼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또 제자리에 와있다. 결국 늘 같은 질문,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복&돌 초단편에서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뭘까? 일상이라는 것은 아무 계획없이 담아 내기엔 너무나 방대하여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경험과 배움으로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포인트가 있어야한다.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 애니메이션이 아닌, 조금 더 깊은 사색, 또는 그 무언가. 매일 매일 개 두마리를 하루에 두 번 산책하는 이 일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 외로워서 시작한 일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가족의 곁에 돌아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삶을 살고 있다.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친구가 없다. 힘들고 아프다고 털어놓고 맥주 한잔 할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땐 닥치고 일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법. 그래서 시작했다. 

다시 복&돌 초단편으로 돌아가서, 일단 두 개의 조건을 만족하는 시나리오를 짜야한다. 졸라 귀여움 + 아! 하는 정도의 통찰. 일종의 에세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일단 이 두가지만 생각하자. 그저 매일 매일 개 두마리를 아침, 저녁으로 산책시키는 일에 대한 짧은 에세이다. 털을 좀 빗기고 싶은데 맘처럼 안되서 고군분투하다 결국 땀범벅이 되는 그런 일상.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이가다도 내 앞에서 방귀를 뿡뿡 거리며 걸어가는 녀석들을 보면 웃음이 터져나오고, 한 겨울에 코가 새빨게 지도록 돌아다녀도 기분 좋은 그런 일상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 

[제작노트] 복&돌 초단편, 기획을 시작하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일년의 반 이상이 지나가버렸다. 이 년전 한국에 돌아오기 전 서러운 눈물과 함께 적었던 '2014년 3, 4분기 계획' 중 아무 것도 실행된 것이 없다. 이대로 두면 올해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체 또 한 해를 날려버릴께 뻔하다. 그리고 다음 해도, 또 그 다음 해도 똑같은 바보짓을 반복할 것이다. 

생각보다 일의 시작은 간단하다. 게으름이 덕지덕지 붙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컴퓨터를 켜든 종이와 펜을 꺼내든 백지를 꺼내들고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일의 진행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림은 예전같이 슥 슥 그려지지 않고 손은 무디다. 글은 적고 또 적어도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분명 시작은 했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함께하는 팀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여기엔 그것만 빼고 모든 것이 있다. 

결국 여기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며 내 앞의 벽보단 괜찮은 팀원이 될 것 같다. 스퀘어 스페이스는 한국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블로그이고 네이버나 다음에서는 검색도 안된다. 이런 공간에 한글로 적은 글이 크게 주목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오픈 된 공간이지만 조금은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시작을 했다.

한국에서의 첫번째 프로젝트 복&돌 초단편 기획을 시작한다.